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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 기술동향] 전도성 고분자로 투명전극 제조 길 연다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11-13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매일 들여다보고 있는 부품이 있다. 빛은 통과시키면서도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부품인 투명전극이다. 화면을 활용하는 정보기술(IT) 기기에는 모두 쓰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투명전극 소재의 왕좌는 인듐주석화합물(ITO)이 차지하고 있었다. ITO는 강한 내구성과 높은 전기 전도도, 반도체공정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화면이 필요한 IT 기기 대부분에 쓰여 왔다. 이런 ITO가 도전을 받고 있다. 딱딱한 소재라 한번만 접어도 손상되면서 전도도가 없어져버리는 특성 때문이다. 노트북이나 평평한 스마트폰 화면에서는 문제될 게 없었다. 하지만 차세대 디스플레이는 말거나 접고, 늘어났다 줄어드는 극한 환경을 이겨야 한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서남지역본부 나노·광융합기술그룹 윤창훈 수석연구원이 투명전극용 차세대 소재를 개발하며 도전장을 냈다. 윤 수석연구원과 부경대 등 공동연구팀은 기존 화학적 처리법 대신 세계 최초로 물리적 처리법을 적용해 전도성 고분자의 전기 전도도를 투명전극 소재로 활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높이는 데 성공했다. 연구결과는 지난달 2일 국제학술지 ''머터리얼스 호라이즌스'' 에 실렸다.

 

첨단소재 전도성 고분자, 발상 바꾼 연구로 전도도 높여

 전도성 고분자는 ITO를 대체할 차세대 첨단소재 후보 중 하나로 꼽힌다. 플라스틱과 같은 소재를 만들 때 쓰이는 고분자 중 전기가 통하는 고분자를 전극 재료로 활용하는 것이다. 고분자의 특성상 늘어나거나 접어도 자유자재로 형태가 변하기 때문에 차세대 디스플레이에 활용하기 용이하다. 만들기도 쉽다 보니 저렴한 가격을 자랑하며 이미 정전기 차폐제 등에 활용되고 있다. 때문에 독일, 일본 등의 소재 강국도 전도성 고분자를 투명전극으로 활용하기 위해 개발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상용화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전기가 다른 소재에 비해 잘 통하지 않는다는 단점 때문이다. 전도성 고분자는 자체 전도성이 ITO의 1000분의 1에 그친다. 활용을 위해서는 전기를 잘 통하는 물질을 섞거나 코팅하는 화학적 처리를 통해 전도성을 올려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물질은 대부분 유기화학용매로 독성이 있는 소재다 보니 공정 개발이 어렵다는 점이다. 고분자와 잘 섞이게 할 첨가제도 필요한데 이 물질을 날리는 과정에서 고온이 필요하다는 것도 단점이다.

 

연구팀은 화학적 처리를 하지 않고 물리적 처리를 통해 전도도를 올리는 방법을 개발했다. 특정 파장대의 레이저를 전도성 고분자에 쪼임으로써 전도도를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열이나 빛을 활용한 물리적 처리로 전도도를 높인 것은 세계 최초다.

윤창훈 수석연구원이 대표적 전도성 고분자인 PEDOT:PSS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윤 수석연구원 연구팀은 PEDOT:PSS에 레이저를 쏘아 전기 전도도를 높이는 기술을 개발했다. 동아사이언스 DB

대표적 전도성 고분자인 PEDOT:PSS에서 이 현상이 발견됐다. 고분자는 긴 가닥이 실 뭉치처럼 뭉친 형태로 PEDOT:PSS는 전기가 잘 통하는 PEDOT을 PSS가 피복처럼 둘러싼 형태로 긴 가닥이 만들어진다. 이 물질의 전도도를 올리려면 PEDOT이 최대한 노출돼 서로 연결되도록 만들면 된다. 기존의 화학적 처리는 PSS를 화학 물질을 통해 녹여 PEDOT이 노출되게 하는 방식이다.

 연구팀은 반대로 PEDOT에 주목했다. 1,064㎚ 파장대의 적외선 레이저를 쏘면 PEDOT만 레이저를 흡수하고 온도가 올라가는 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레이저를 쏘면 PEDOT의 온도가 올라가고 이를 둘러싼 PSS가 먼저 녹아버린다. 전선이 과열되면 피복이 녹아 속의 구리선이 드러나듯 PEDOT이 노출되는 것이다. 윤 수석연구원은 “레이저의 세기가 너무 강하면 고분자가 탄화되며 투과율이 낮아지는 문제가 있어 최적점을 찾아내는 연구도 병행됐다”고 말했다.

 물리적 처리법으로 전도성 고분자의 전기 전도도는 약 1,000배까지 높아졌다. ITO와 비슷한 수준까지 구현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레이저를 활용하기 때문에 우선 전도성 고분자를 기판에 바른 후 레이저로 패터닝함으로써 전극을 쉽게 패터닝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윤 수석연구원은 “이미 상용화가 완료된 1,064㎚ 파장대의 레이저를 쓰는 것도 비용 면에서 장점”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낸 윤 수석연구원은 “운이 좋았다”고 했다. 하지만 소재와 공정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한 발견이었다. 윤 수석연구원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에 레이저를 쏘면 발광도가 떨어지는 현상을 연구하던 중 OLED와 전도성 고분자가 비슷한 물질인 것을 떠올렸다. 윤 수석연구원은 “전도성 고분자에도 레이저를 쏘면 OLED처럼 전기가 통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저항이 떨어지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윤 수석연구원은 이번 연구가 일본이 주도하는 ITO 시장을 대체하는 첨단 소재 개발의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IT기기의 필수 소재로 활용되는 ITO 필름은 일본이 현재 시장점유율 70%를 차지해 1위”라며 “PEDOT:PSS는 국내에서도 공급이 어렵지 않은 만큼 ITO의 다음 소재를 찾는 이번 연구가 소재 자립화에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영향을 미치면 좋겠다”고 말했다.

 

디스플레이 제조 공정을 주로 연구하는 윤 수석연구원은 이번 연구처럼 기존에 널리 쓰이던 소재가 한계에 부딪혔을 때 이를 돌파하는 새로운 공정을 찾는 것도 소재개발 연구에 유용한 방법임을 강조했다. 윤 수석연구원은 “기존 소재로부터 월등한 능력을 찾아내려면 소재와 공정 연구가 함께 가야 한다”며 “단위 소재 개발도 중요하지만 결국엔 생산기술이 병행돼야 우리나라도 진정한 소재·부품 강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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