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8만명 줄여 전기차에 100兆 베팅… 車 생존 드라이브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11-29

 

100조원. 최근 한 달 새 글로벌 주요 자동차 업체들이 각각 발표한 투자 금액을 모두 합친 액수다. 당장 쏟아붓는 단발성 투자부터, 앞으로 4~5년간 점진적으로 이뤄지는 투자까지 방식은 다양하지만, 투자의 중심은 '전기차' 한 곳에 집중돼 있다. 자동차 산업이 대변혁을 맞고 있다. 내연기관차 수요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세계 각국의 친환경 규제는 크게 강화되고 있다. 업체들은 당장 내년 이후 기존 휘발유·경유 내연기관차만으로는 사업을 계속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업계 전반엔 '지금 당장 투자하지 않으면 앞으론 따라갈 기회조차 없다'는 절박함이 번지고 있다"며 "업체들이 자금을 짜내고 짜내 전기차에 올인하는 게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폴크스바겐의 신형 전기차 'ID.3'가 독일 츠비카우 공장에서 생산 중인 모습. 폴크스바겐은 향후 5년간 600억유로(약 78조원)를 투자, 전기차 75종 등을 개발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투자금은 과잉 설비와 잉여 생산인력을 줄여서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사진은 폴크스바겐의 신형 전기차 'ID.3'가 독일 츠비카우 공장에서 생산 중인 모습. 생산 라인에선 근로자 대신 로봇이 차체의 뒤틀림 등이 없는지 확인하고 있다. /블룸버그

100조원이 움직인다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자동차 업체는 독일 폴크스바겐이다. 폴크스바겐은 지난 18일 앞으로 5년간 600억유로(약 78조원)를 투자, 순수 전기차 75종, 하이브리드차 60종을 개발·생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체 투자액의 60%(360억유로)는 신차 개발에, 나머지는 공장 부지 구입 및 설비투자에 쓰일 전망이다.

폴크스바겐은 이어 25일엔 중국에 40억유로를 투자해 내년부터 전기차 양산을 시작한다는 계획을, 26일엔 오는 2025년까지 70억유로를 투자해 차량의 디지털 소프트웨어 및 자율주행 플랫폼 개발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연이어 발표했다. 투자액을 공개하지 않은 배터리팩 공장 신설 계획, 자율주행 자회사 설립 계획 등을 모두 더하면 총 투자 금액은 80조원을 훌쩍 넘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기차 투자 쏟아내고, 감원하는 글로벌 자동차 업계

2015년 '디젤게이트' 사태 이후 벌금·리콜 등에 300억달러(약 35조원)를 쓴 폴크스바겐은 오는 2040년쯤엔 내연기관차 생산을 완전히 중단할 예정이다. 회사의 미래 사업 목표를 '전기차'에 두고 통 큰 베팅으로 단숨에 세계 선두 업체를 따라잡겠다는 계획이다. 헤르베르트 디스 폴크스바겐그룹 회장은 "전기 모빌리티 없이 우리는 기후변화를 상대로 한 전쟁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GM도 지난 19일, 오는 2023년까지 30억달러(약 3조5000억원)를 투자, 현재 내연기관차를 생산하고 있는 미국 디트로이트 햄트랙 공장을 전기차 전용 공장으로 바꾼다고 밝혔다. 새 전기차 공장에선 미국 시장용 '전기차 3종'(준중형 SUV, 대형 SUV, 픽업트럭)이 연간 10만대 생산될 예정이다. BMW는 중국에 연산 16만대 규모 전기차 전용 공장을 신설할 계획이고, 메르세데스-벤츠의 모기업인 다임러는 전기차 브랜드 'EQ' 모델 개발에 100억유로(약 13조원) 이상을,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 분야에 10억유로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 2022년까지 소형차부터 대형 SUV까지 승용차 전 라인업에 전기차 모델을 선보이는 게 목표다. 독일에 유럽 내 첫 번째 전기차 생산 공장을 짓기로 한 테슬라와 중국에 전기차 연구·개발 법인을 세울 도요타도 전기차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경영난에 시달리는 닛산조차 태국에 3억3000만달러(약 4000억원)를 투자, 전기차 생산 설비를 증설하기로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전기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 따르면, 2021년엔 전 세계에서 전기차 등 친환경차 신차 300여종이 쏟아질 전망이다.

투자금은 인력 구조 조정으로 마련

업체들은 인력 구조 조정 등으로 투자금을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내연기관이 없는 전기차는 부품 수가 기존 자동차 대비 3분의 1 수준이다. 조립 생산 인력 수요가 급감하는 것이다.

아우디는 오는 2025년까지 생산직 근로자 9500명을 감축할 계획이라고 27일 밝혔다. 전체 직원의 10%가 넘는 규모다. 아우디는 감원 등을 통한 조직 변화로 2029년까지 600억유로 자금을 확보, 이를 미래차에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다임러도 2022년 말까지 사무직 10%에 해당하는 1100여명을 감원, 비용을 10억유로 이상 줄이겠다고 밝혔다.

GM은 전 세계 7개 공장을 폐쇄해 총 1만4000여명을 감축할 계획이고, 폴크스바겐도 2023년까지 잉여 생산 인력을 7000~8000명 감축하기로 했다. 두 회사 모두 감원으로 절감한 비용을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에 집중 투자, 미래차 시장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는 게 목표다.

닛산(1만2500명), 포드(1만2000명)도 비슷한 상황이다. 일본 닛케이는 최근 "올 들어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총 감축 인원은 7만명 규모로, 이는 해당 기업들에 종사하는 전체 인력의 약 4%에 해당한다"면서 " 2008년 금융 위기 때 10만명을 감축 한 이후 11년 만에 최대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자동차 업계의 구조 조정이 주로 '비용 효율화' 차원에서 이뤄졌다면 최근의 인력 감축은 미래차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연구·개발 자금 확보' 성격이 짙다"면서 "업계가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전략에 매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윤형준 기자